18년 전 다가온 이 사업이 있어서 감사합니다.이런 회사가 존재해서 감사합니다.아무런 능력과 스펙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들었던 마케팅플랜을 듣고 가슴이 뛰었습니다.열심히 살 자신은 있었지만 열심히 사는 것 만으로는 제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있을 즈음 이 사업으로 제 인생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2달 반 만에 SP를 성취하고 연
2019 1.1 WWDB-K 그룹은 WWDB-FCAA로새롭게 출발합니다. 사랑하는 WWDB-Korea 패밀리 리더님들 및 모든 Core 리더님들께!저희 부부는 오랜 세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1991년 5월 1 일 AKL과 함께 WWDB-Korea그룹이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린 지 벌써 27년이 훌쩍 넘었습니다.그날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 하리라”라는 하나님의 말 씀을 굳게 붙잡고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국내외 빠른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한결같이 굳건한 팀워크로 우리 들의 영원한 파트너인
직장생활 하면서 평범하게 지내던 중 교회선생님으로부터 Amway를 전해들었습니다.저에게 Amway는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열심히 하셨다가 그만두신 일이고, 가끔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치약이나 바디 젤, 세제 몇 가지 쓰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20대 때 화장품 한번 쓰고 살빼려면 푸로틴을 먹어야 한다며 제품을 쓰면서도 좋은지 안 좋은지도 몰랐습니
남편과 두 아들을 챙기며 버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워킹맘 이었습니다.그런 저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내일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30대였습니다.어느 날 직장으로 찾아온 친언니에게 Amway 사업을 듣고, 제 모습이 비이커 속의 개구리처럼 따듯한 물 속에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언니가
육아문제로 10년 간 했던 임상병리사 일을 그만두고 주부로 돌아왔을 때 병원 선배님으로부터 Amway가 찾아왔습니다. 20대~30대 치열하게 근무했던 10년의 병원을 퇴직하는 순간 제로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게다가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수입이 줄자 고민이 시작 되었습니다. 다시 일을 하고 싶은데 그만두는 순간 `0‘으로 돌아가는 직장으로 가
-치과 위생사로 11년 동안 치과에서 근무했었고 일에 지치고 힘들 때 즈음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잘 살게 되겠지 라는 기대를 품고 육아에 전념하던 중둘째가 태어나니 직장에 다니던 남편의 월급으로 많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육아를 하면서 복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무언가를 찾던 중 Amway가 기회로 보였습니다.아이 키우면서 제품 쓰는 소비자였던
나의 삶은 따스한 햇살만 가득하다는 생각을 품고 살던 30대초. 자영업을 하던 저에게 ‘인생이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사고를 당해서 긴 병원생활과 수술로 지쳐 있던 저에게 스폰서님은 잊고 있던 따스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스폰서님과 그와 함께하는 언니들과 함께 있음이 좋아서 나갔던 저에게 ‘어쩌면’ 이 수단이라는
어릴때부터잘살고싶은욕심이많은아이였던것같습니다.열심히.부지런히아침부터.저녁늦게까지시간을쓰면잘살수있을거라생각했고사회는저에게그렇게가르쳐주었습니다.19세때부터 15년을헤어디자이너로 2개의샵을운영하는원장으로휴가한번없이눈코뜰새없이바쁘게시간을보내고있을때어느순간자영업의한계아니나자신의한계를느꼈고그곳에서탈출할수있는방법은결혼뿐이었기에결혼을선택했습니다. 임신을하면서미용실은그만두
대기업을 다니던 언니가 가져온 Amway에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주위의 많은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지켜내며 행하던 언니의 일이 사업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급 의류세제와 뉴트리키즈를 먹이며 감동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소비자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어느새 50여만 원의 캐시백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아이를 교육시키고 싶었고 이런 돈이 매달 들어온
스폰서님을 통해서 온 Amway는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자산을 만들어낼 수 있는 멋진 사업 이었습니다.자영업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35세에 저는 스폰서님이 주신 책과 음원을 들으면서 심장이 뛰었습니다. 그 책속에서 제가 본 것은 수입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Amway가 2차 수입이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며 저의 Amway가 시
현재에 만족하며 미래의 삶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살던 저희에게 Amway가 찾아왔습니다.Amway는 미래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고, WWDB-K 시스템은 단비가 돼 싹을 틔웠습니다.학습지교사와 신문기자로 맞벌이를 하는 저희 부부는 다른 가정과 비교해서 수입이 적지 않았지만 현재의 삶에 충실한 저희에게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봄이 오면 남쪽부터
평범했던 가정 주부가 Amway 사업을 한다고 하니 박해준 리더가 반대하였습니다. 남편은 제조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사업이란 직원이 있어야 하고 사무실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 어려운 경쟁 구도를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저에게 Amway 사업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심플한 사업입니다. WWDB-K 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2년
무언가 배우기를 좋아했던 저에게 Amway는 요리의 배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좋은 퀸으로 쉽고 다양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모임이 좋았을 뿐 Amway가 처음부터 비즈니스가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소비자로 2년을 보내던 어느 날 어쩌면 Amway가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 몰래
수학 개인 레슨을 하며 한 달 버는 월 소득은 높았지만, 20년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투 잡을 하면서 건강상 문제가 찾아와서 개인 레슨 일만 하고 있을 때 스폰서님이 지인의 소개로 오셨습니다. Amway 사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만 만나 뵙고 그만 만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양쪽 팔에 엘보가 심하게 와서 고통받고 있습니다.한 일 년 전쯤부터 심하게 양쪽에 통증이 있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약물요법으로 처방하더니 별 차도가 없자 고주파 치료를 권하더군요. 그런데 이 고주파 치료도 일주일에 몇 번씩 가서 치료를 받는 데도 별로 호전되는 느낌을 못 받았습니다. 결국 의사는 주사요법을 권하게 되었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4박5일의 필리핀 컴패션 비전트립을 다녀왔습니다. 처움에 비전트립을 신청 했을때는교회의 아웃리치와 같은 봉사활동이려니 생각했습니다. 가기 전에 컴패션 오리엔테이션에서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기대하고 오라는 목사님 말씀에우리들의 비전트립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필리핀 도착하여서정인대표님과 함께 국가사무실을 방문하여컴패션
지난 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Amway를 만나기 전의 인생과 Amway를만난 후 천천클럽멤버로 살고 있는 인생은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32세의 나이에 아이를 키우던 전업주부가.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았던 저였습니다.이웃을 돌보거나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저였습니다. 그러나먼저 케냐에 비전트립을 다녀오신스폰서님의 모습을 보면서.많
31세 시작했던 내 Amway!WWDB-K 시스템대로 그냥 2년에서 5년 10Core하면 다이아몬드가 된다길래 믿고 오로지 10Core했더니 3년4개월이 지나서 다이아몬드가 되었다. 역시 시스템대로가 핵심이었다. 그뒤 39살 수석다이아몬드가 되면서 간절히 원하던 천천클럽 멤버가 되었다. 다이아몬드가 되고 돈너머세상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걸까? 한참 고민했
뉴 EDC 류지민입니다. 저는 Amway를 만났기 때문에 라이프 스타일이 생겼습니다. Amway를 만나기 전에는 그냥 라이프입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던 학생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분야만 했었는데 세상으로 나오니 많은 사람과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하고 경쟁해야 내가 올라설 수 있는 자리가 생기는 사회구조를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