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아들 둘을 두고 힘든 육아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루 하루 보내면서 저의 삶이 더 나아지리라 믿으며 지냈지만 큰아이의 원인 불명의 열로 한 달 간 대학병원에서 생활하고 저는 고질적인 빈혈로 몸이 더욱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남편 회사 동료로부터 Amway를 전해듣고 뉴트리라이트 제품을 만나서 아이들의 고질적인 중이염과
Amway를 만나기전 저는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후 백화점 1층 화장품코너에 입사해 누구보다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던 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추가수입을 벌기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았습니다.매달 한 번씩 만나는 모임에서 직장 선배였던 언니에게 Amway 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평범한 직장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지만, 뒤돌아보면 목적과 방향 없이 그냥 앞만 보고 뛰어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친하게 알고 지냈던 분을 통해 Amway를 소개받게 되었습니다.사업설명을 듣기 전에는 Amway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편견도 없었습니다.두 번의 사업설명을 듣고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
3년 전 가볍게 Amway가 전달되었습니다. 12월 추운날 친구들과 막창에 소주 한잔하는 자리에서 였습니다. 2년 정도 Amway 사업하는 친구로부터 며칠 전 일시불 보너스 천 육백 만 원을 받아 반대하는 남편의 입막음을 위해 천 만 원을 시원하게 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워킹 맘으로 22년을 생활하며 아끼고 모아도 적금 들기 힘든 나에게 굉장히 쇼
그저 아이 교육하는 데만 초집중하고있을 때 우연히 아랫집 사시는 분께서 누군가를 모시고 오셔서는 Amway 사업을 들어보라고 하신 데서 불편한 만남이시작되었습니다. 오셔서 주시고 가는 책을어느 날부터 읽기 시작해서 궁금증에, 못이기는 척하며 세미나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표정도 외모도 멋지고 자신감에 찬 모습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늘남편으로부터 경
Amway의 시작은 친언니가 전달해준 세탁 세제였습니다. 오랫동안 야근이 반복된 직장생활로 인해서 집안일에 손을 대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갑작스런 전업주부가 된 후 혼자가사일을 해나가는 게 가장 두려웠습니다. 내 손으로할 줄 아는 게 없으니 화장지 하나 세제 하나 생필품을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몰랐습니다.그래서 친언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학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을까항상 찾고 있었을 때, Amway 플랜을 들었습니다.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5년 뒤 10년 뒤 다른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성장시키고 우리 가족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무언가를 찾기 위해 항상 노력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원룸 월세로 결혼 생활을 시작하여 아파트도 장만하고 대출금을 차근차근 갚아 나가고 있었습니다.첫 아이가 생기고 행복이 깊어갈수록 이 행복이 계속 유지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무척 많이 고민했습니다. 건표고 유통과 소형 아파트 임대업, 상장/비상장 주식과 토지 투자, 시골땅에 묘목, 식용달팽이 양식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우리의 행복을 유지해줄 수 있는 수단
‘열심히 사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하면 ‘접 니다’라는 손들 수 있을 만큼 시간을 아까며 살던 어느 초겨울 날 너무 좋아하고 인생 멘 토처럼 존경하던 친오빠가 Amway 사업이 인생의 스페어 타이어라며 나에게 가지고 오 셨다. 너무나 낯설고 불편하고 이해가 되지 않 아서 쌀쌀하게도 대했을 텐데도 꾸준히•지속적으로•열정적으로 전해 주셔서 우
Ruby를 목표로 달렸고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루비 성취는 결정하고 시작한 2017년 6월 이후 1년 1개월이 걸렸습니다. 15년 전 직장 초년생 때 미래를 어떻게 준비 해야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직장에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30대 초반에 자영업을 위해 회사를 나와서 아내와 카페를차리고 동시에 생필품 대리점 도소매사업을 오픈해서 본격적인 자
Amway 사업을 하기 전 남편과 저는 각자 열심히 대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시간이 지나고 직급이 올 라가면서 ‘가정이냐 회사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시기를 맞 게 되었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저희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회사에 올인 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가정과 아이들에게 시간 쓰는 것이 힘들어졌 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큰
학습지 선생님으로 열심히 직장생활 하던 중 학부모님인 스폰서님의 애정어린 후원으 로 인해 Amway 사업의 비전과 가치를 알게 되 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폰서님의 말씀대로 10 core를 쓰는 날로부터 2~5년 안에 다이아몬 드가 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남편과 함께 열심 히 부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회계연도에는 파트너 리더님들의 동반성장 만
Amway 라는 말이 처음 내 귀에 들렸을 때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들 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둘째 자모로 만난 스폰서님 이 꾸준히 해나가며 여행까지 갔다 오는 모습을 보고 Amway가 궁금해지 기 시작했고, 그즈음 스폰서님이 집에 오셔서 Amway 플랜 설명을 해 주 셨습니다. 집에서 미래만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 경제공부를 해보지 않겠
2019 기해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더욱 힘차고 신나는 Amway!! 결혼 15년 차 아이 셋을 둔 전업주부였던 저는 열심히 사는 남편과 예쁘고 건강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소하지만 감사한 일이라 여기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훌쩍 커서 막내까지 학교에 다니게 되고 점점 여유로운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
아픈 아이에게 찾아온 비타민과 유산균이 저희 부부에게 다가온 Amway의 시작입니다. 남편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수입이라도 얻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며 성장을 하였지만 더디기만 한 사업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가면서 힘든 시기가 찾아 왔습
가난했던 어린 시절, 오로지 꿈은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선배님으로부터 Amway 사업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좋은 플랜이지만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스폰서를 피해 다녔습니다. 결국 책과 음원 스폰서의 권유로 처음 참석한 미팅이 제 인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Amway를 사업으로 진행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빚만
파란 하늘 쏟아져 내리는 하얀 눈눈의 왕국 삿포로는 너무나 기대하던 꿈의 장소였습니다. 어느 리더님의 강의에서 내 아이의 첫 스키장이 삿포로였다는 이야기가 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엄마이기에 내 아이의 인생이 바뀌길 기대하며 시작한 Amway였습니다.그런데 제 아이가 실제로 첫 스키를 그곳에서 배우고, 눈이라는 단어를 이곳 삿포로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9월 1일부 뉴 에메랄드 권혜경&오세호입니다. 저희는 친여동생으로부터 사업을 전달받아서 지금 자매가 함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라는 상황이 저의 삶에 갑자기 왔었던 적이 있었고 저의 수입이 완전히 끊겨 버린 경험이 있어서 추가 수입을 필요로 했습니다. ‘만약에’를 위해 대비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때 동생이 저희의 상황을 알기에 저희에게
내 삶이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곳에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만이 아니고 나의 남편과 아이들의 미래도 불안한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어둠 속에서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그때 자영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6개월의 자영업을 한 후 드는 생각은 자영업은 나와 나의 가족의
주변 누군가가 Amway를 한다 해도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 전혀 내 인생과 상관없었던 Amway였습니다. 할 이유도 할 생각도 없었던 Amway를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필연이라는 말이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인 듯합니다. 우연히 찾아온 Amway지만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매력적인 일입니다. 친한 친구로부터 가볍게 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