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있던 저는 항상 입안이 헐어 고생을 하던 중병원에 다니던 친구로부터 뉴트리라이트를 전해 받았습니다. 그렇게 Amway는시작되었습니다. 건강이 많이 호전되고 친구가 꾸준히 전달해 준 정보를 접하다 보니 식품으로 건강을 지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남편이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퇴직하고 나면 수입이 끊기게 되는 우리
얼마 전 한 축구 선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다 감독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은 것이 문제가 돼 징계를 받느니 마니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젊은 선수가 팬들과 소통하는 재미로 시작했던 소통의 통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표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지경까지 가버린 것이다. 이렇듯 몇몇 친한 지인들과 소통의 창구로 시작
아직은 어색한 사파이어라는 타이틀!!!보수적이고 척박한 밀양이라는 곳에서 스폰서님과 함께 성취해낸 핀이라 더욱 값지고 특별한 것 같습니다.약 4년 8개월 전 무언가에 이끌려 나셨던 미팅장이 내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놓을 줄은 몰랐습니다.OM장이 없어 김해, 창원, 대구, 부산으로 미팅을 오가며 꿈을 나누고 미래를 상상했는데지금은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펼쳐지
이 사람들은 또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그들과만 대화합니다. 그들 역시 세상을 비난하고 헐뜯습니다. 패배의식은 늘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죠.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들은 계속 절망 속에서 정지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인생에서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늘 도전합니다.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네트워크의 화폐적 가치명목가치와 실질가치100원의 가치는 얼마인가? 물론 100원이다. 그러면 100원의 가치는 언제나 100원일까? 맞다. 그러나 틀렸다고 할 수도 있다. 반만 맞는 답이다.100원에 두 개를 살 수 있는 제품(한 개의 가격은 50원)이 있다. 그런데 10년 후 이 제품의 가격이 2배로 오르면 100원으로 제품을 한 개 밖에 살 수 없게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대학교수가 되기 위한 정규 코스인 유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들이 실용적 학과 위주로 재편성되면서 제가 전공했던 과목이 점점 대학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고 자연히 제가 강단에 설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해졌습니다. 오직 한 목표만 보고 달려오다가 갑자기 그 목표와 더불어 나의 미래도 막연해져버린 걸 깨달았을 때 아는 동
남편이 이 사업을 처음 가져왔을 때,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 가정에도 많은 변화들이 따라왔다.24평 아파트에서 40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작은 경차를 몰고 다니다가 자동차가 변했으며 이 사업을 통해 5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가족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의 방에는 꿈의 보물지도가 걸려있고 “ I can do
대학졸업후 직장 생활 2년 만에 결혼해서 남들처럼 평범한 주부생활을 기대하며 나의 사회생활은 짧게 끝이 났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미래에 대해서 현실점검을 조금씩 하게 되고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있을 때쯤 지금의 스폰서님으로부터 Amway사업을 전해 들었다. 치약을 거울에 비비면서 “이 치약 정말 좋지?” “ 언니가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Amway 사업
Amway 사업을 얼떨결에 알아듣고 가입한지 벌써 2년 6개월.올해는 와이프와 나의 사업 역사상 가장 많은 핀을 한 해에 달성한 해로 기록 될 거 같다. 파운더스 플래티넘으로 시작한 한 해의 마감을 다이아몬드로 마감하게 되면서 사파이어, 파운더스 사파이어, 에머랄드, 다이아몬드까지 무려 네 개의 핀을 한 해에 달성하게 되었다.처음부터 너무나 만만해 보였던
저는 항상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으며, 자식들을 잘 기르고 싶었습니다. 결혼 후 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막연히 열심히만 살면 다 잘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으며, 세상의 벽은 높았습니다. 그러던중 올케 언니가 꾸준히 알려주던 Amway가 생각 났습니다. 처음에는 세제인줄 알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
부부가 직장생활만 고집스럽게 하던 중 둘째를 출산하고생각의 변화가 있었습니다.'이렇게 직장생활만 해서 딸을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까'여러 날을 고민하던 중 지속적으로 남편의 직장 동료로 부터권유받던 Amway가 떠올랐습니다.전화를 걸어 '어떻게 사업을 알아볼 수 있는지'물었고안내받은 세미나에 참석해서 우리 부부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그때 부터 새
아이들 눈 영양제를 찾던 중에 만난 Amway는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축복입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묻어두고 꺼내보지도 못했을 가족들의 꿈들을 이룰 수 있고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 줄 수 있는 경제 복음 Amway.3년여 동안 애용자로 제품을 쓰고 있던 제가 가정 경제 위기가 왔고 들을 맘을 가지고 마케팅 플랜을 듣고 시스템 미팅에 100%
처음 Amway는 부담스러웠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그러나 지금의 스폰서님이 1년 반동안 끊임없이 찾아오면서 건조하던 피부가 좋아지고주부습진이 없어지면서 마음을 열게 되고 사업설명을 듣게 되었다. 사업설명에서 F/PT이 내 가슴에 들어오면서 일시불 보너스가 탐이 났었다. 이때부터 스폰서님의 안내로 10core에 접속하면서 책, 테잎,미팅에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백해기입니다. 고등학교시절 결막염과 비염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뉴트리라이트를 소개 받은 것이 제가 처음 Amway를 만난 계기였습니다. 덕분에 소위 SKY 명문대 진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부모님과 사촌형이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냥 좋은 제품이구나, 부업을 하시는 구나 하는
아침햇살이 여름답게 따가운 7월이다. 7월은 내게 특별하고 의미 있는 달이기도 하다.2001년 7월 그 때 7개월 된 딸의 육아로 나는 지쳐있었고 남편은 자영업으로 매일 늦은 귀가와 스트레스로 지쳐있었고 신혼의 즐거움보다는 삶에 매여 뭔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교회언니를 통해 Amway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언니를 돕고자 제품을 한두 개 주문
내 몸 안에 종양이 있는 것도 모른 채 아이의 건강 회복에만 전념하며 여러 병원을 전전 긍긍하며 지냈다. 다행히 나의 건강 상태를 알게 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셨기 때문에 입원수속을 빨리 할 수 있었고, 천만 다행으로 수술결과도 좋았다. 종양 덩어리가 몸속에서 없어진 홀가분함과 동시에 나의 일이 주어짐에 대한 감사함이 귀한 인생을 그냥 살면 안 되겠다는
세상의 비밀을 한번에 알아듣고 실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운이고 다행스러울까요? 저는 Amway사업 재수생으로 월드와이드 시스템을 마음을 열고 듣게 된 사업설명에 뛰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안보이고 경제적 여유가 보이는가 싶으면 또다른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자영업에 지쳐서 다른 대안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살았습니다. 힘든
열심히 그리고 쉬지 않고 살면 잘 살 수 있을 것 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채 무작정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정신없이 살아내던 어느 날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본 내 자리는 시작점에서 보니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마이너스 걸음을 하고 있었고 시간만 하염없이 흐른 상태였다.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시작점은 비슷했으나 도착점이 다른 너무 많은 차이를 보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하고 싶은 것 많았지만 포기부터 배웠고 “하고 싶다”는 말은 꾹꾹 참아야 한다는 것을 먼저 배웠습니다. 열 가구도 안되고 차도 하루 한 두번 들어오는 곳이었습니다.정규 코스는 중학교 졸업하고 일자리를 잡던지 그보다 조금 나으면 야간 고등학교 진학 정도였습니다. 최고 엘리트 코스는 여상 졸업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미팅이다 서클 활동
감히 제가 생각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천천클럽 1기 멤버로 가입했습니다.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합니다. 해마다 월드 와이드 행사 때 크고 작은 기부문화를 보면서 해가 거듭할수록 가슴이 뭉클해 옴을 느꼈습니다. 언젠가부터 김일두 리더님의 '천천 클럽' 말씀에 '아! 나도 천천클럽 멤버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기 시작했습니다.생각하는 것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