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금융권에서 펀드매니저로서 나쁘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던 저에게 있어 Amway는 ‘투자하고 싶은 회사’였습니다. 신생 벤쳐업체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까지 많은 기업들을 만나봤지만 Amway는 그 어떤 회사보다도 ‘신뢰’있는 회사이고 ‘리스크’가 없는 반면 매우 ‘소외’되어 있는 회사였습니다. 60여년 간 정말 믿을 수
16년 간 영업을 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었던 저에게 다가온 Amway는 하지 않을 이유만 있었던 사업이었습니다. 내가 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참가했던 미팅 속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이유들만 머리 속에 채워졌습니다. 인연이 되지 않아 그동안 두 번이나 놓쳐버린 것을 후회하며 멈추지 말고 집중해서 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Amway사업을 진행하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Amway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수능을 한 달 남긴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제게 훗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질문하셨을 때, 저는 "엄마같은 사람이 되고싶어요"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의외의 대답에 놀라시며 그 이유를 물으셨을 때, 저와 동생에게 늘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는
안녕하십니까? 전남목포에서 사업 하고있는 9월1일자 F.PT 강혜미입니다. 제가 사업을 진행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제 네트워크는 15%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는데 우리팀에서 루비를 성취하신 리더님이 나왔습니다.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아직 1000만 PV를 만드는 것도 깜깜한데 루비는 도대체 어떻게해야 되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진짜 네트워크
27살에 결혼을 하고, 평범하게 저희도 맞벌이부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가다보니 우리에 삶이 이렇게 살다보면 크게 변하는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투잡으로 자영업을 해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자영업이 곱창집 이었습니다. 저에게 카운터만 보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주방에서도 일을 하게
남편과 함께 자영업이 너무 잘돼서 2호점까지 진행하고 있을 때 중학교 친구로부터 Amway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영업을 열심히 밤낮으로 하고 있었고 잘되고 있었지만 시간의 여유가 없고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나오지 않는 삶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습니다. 막연히 자산이 있으면 시간의 자유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였는데 Amway가 자산
작은 학원을 운영하고 있을 때 학부모님으로부터 Amway 사업을 전달받았습니다. 처음엔 "왜? 저런 일을 하실까?" 라고 오해하고 학원에 불쑥 찾아 오시는 스폰서님이 부담스러웠지만 꾸준하게 후원해 주신 덕분에 사업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항상 불안하게 생각하던 노후가 이 사업으로 준비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 놀랐습니다. 남편이 직장
홈 미팅에서 데몬을 보고 제품을 바꾸기 시작했고 제품을 써보고 먹어보니 감동 받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게다가 캐시백을 현금으로 받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업을 하게 되었다. 허약 체질 엄마 뱃속에서 낳은 아이들이라서 모두 저체중아로 태어났고 시도때도 없이 병원을 다녀야 했는데 아래층에서 갖다준 유산균,비타민C를 먹여보니 효과가 있어 뉴트리라이트를 먹이기
항상 꿈이 있었습니다.항상 목표가 설정 되어 있었습니다.항상 목표를 보고 열심히 뛰었습니다.항상 잘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더 잘 살려고 한국 땅을 밟고 자영업을 시작한 지6년 만에 우리 부부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Amway 건강식품을 섭취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스폰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영업에만 집중했던 우리는 스폰서님과 업라인 스폰서님
결혼하고 늦게나마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중에Amway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육아와 집안일을 하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아이가 아프면 공부집중도 어렵고 아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하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큰아이는 면역력이 약해서 잦은감기로 항상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았고, 둘째아이는 태어나서 아토피로 항상 빨간 얼굴과 두피가 진물이 있었습니다
에메랄드 핀에 도전했던 이유는 가난과 이별하고 상류층으로 가는 관문이기에 성취하고자 결심했습니다. 치과근무6년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직장인 신랑이 주는 월급만으로 불안하던 차에 우연히 처음 듣게 된 사업설명은 저에겐 희망 이였고 50만원 추가 수입이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5년후 삶은 현재 내가 생각하고 24시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결정된다는 말이
치과에서 일하며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치과일이 나의 적성에 딱 맞는 것 같다며 꿈도 잊은 채 하루하루 치과에 헌신하며 15년을 보냈습니다. 경제적인 부담으로 둘째 갖는 것도 미루었는데 친구가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마음을 아셨는지 저에게도 둘째 아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저는 똑같이 첫째
러시아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고, 대기업 자동차 연구소에 입사할 때만 해도 나에게 이런 인생이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들과 다른 스펙으로 조금 더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연구원이라는 직업이 남부럽지 않은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일상, 똑같은 이야기, 쳇바퀴 같이 도는 시간이 조금은 답답했지만, 시간이 쌓이면 경제적인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 키우는 것에 올인하며 지쳐있을 때쯤 우연히 알게 된 언니가 디쉬드랍스 선물세트를 들고 놀러 왔습니다. 육아와 가사일만 열심히하던 나는 들으려하지 않았고 내가 할 일 같지는 않았지만 “상속”이라는 단어 때문에 Amway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해도 시간은 가고. 안 해도 시간은 간다. Amway를 했을 때 5년과 안 했을 때 5년
조기교육에 관심이 많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헬리콥터 엄마로 살던 중 우연한 기회에 Amway 요리교실을 만났습니다 Amway는 싫었지만 요리선생님이신 스폰서님이 너무 좋았습니다.스폰서님께서 Amway가 추가수입이 될 수 있다는 것과 Amway를 수단으로 삼아서 마르지 않는 인세수입을 받을 수 있고 아이에게 상속이 되고 평생 여행할 수 있는 Amway
Amway회원 가입하고 13년 만에 다이아몬드가 되었습니다.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또한 WWDB-K 시스템 안에서 배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신 월드와이드 탑리더님이신 김일두&오영옥 스폰서님, 전계현 스폰서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다이아몬드를 성취하고 나서 어떻게 성취할 수 있었나 되돌아보니 철저하게 WWDB-K 시스템을 믿었습니다."100%
지난 6월 김일두 리더님께서 컴패션과 함께하는 필리핀 일로일로 지역 비젼 트립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천천클럽 이전에 엄마의 마음으로 준비케하신 깊은 뜻과 컴패션의 동행이 가져다 줄 엄청난 영향력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첫째날, 에어컨을 켜고 시원하게 달리는 차 속에서조차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괴롭게 여기던 우리들 앞에 그늘막 하나없는 뙤
“필리핀 비전트립 갑시다” 김일두 리더님의 전화 한 통으로 처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필리핀 행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컴패션은 6.25 전쟁 이후 버려진 한국의 아이들을 돌보고자 시작한 단체입니다. Amway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시작은 미약하였습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컴패션은 1993년 수혜국을 졸업하고 2003년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월급쟁이와 사업가를 구분 짓는 특징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무엇일까요? 저의 경우 대기업 생활 9년과 중소기업생활 11년 등 총 20년 정도의 월급쟁이 생활을 해봤지만 월급쟁이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일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경향도 있었고 윗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욕구가 강해 스스로
꾸준히 묵묵히 한결같이 Amway 비즈니스를 진행한 결과 뉴 핀을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수석다이아몬드가 되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핀을 성취하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은 없습니다. 반드시 성취 한다는 강한 목표를 가졌을 때만이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 회계연도 들어서며 팀을 위해서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강한 목표가 생겼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