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통해 우연히 집들이 가서 만난 동창생이 사업을 한다 해서 그냥 올 수 가 없었습니다. 이것저것 제품을 주문하고 요리미팅에 초대되었습니다.그 곳에서 만들어주신 찹쌀파이가 너무 맛있어서 인덕션, 대팬, 소스팬까지 구매를 하고 집에서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회원가입하고 물건 쓰고 스폰서님께서 1년 만에 광주 저녁에 있는 강의를 10번만 들어보자고 하셨는데 친구 시누이라서 거절하지 못 한 것이 오늘날의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습니다. 20대 초반에 큰 수술을 하고 항상 부모님 그늘 안에서 살아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꿈이 없던 저에게 꿈을 찾아준 Amway는 2년 전쯤 시작되었습니다.올케 언니가 자기를 도와달라 하시며 함께 꿈을 꾸자고 했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Amway사업은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 특별한 사람만 성공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똑똑하지도 잘나지도 특별나지는 않은 저였기에 잘 할 자신은 없었지만 누군가 돕는 일은 자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뭘 도와주면 되냐고 물었습니다.그냥 공부하자고 했습니다. 그 공부가 WWDB-K 시스템 참석 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WWDB-K 시스템을 들으니 평범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직장인 나에게
대학 졸업 후 원하던 대로 회사에 입사하여 마트에서 영양사로 근무를 하고 결혼도 했습니다.경력이 쌓이면서 급여도 늘고 그에 따라 새벽 출근이 포함된 조금 더 힘든 병원 사업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출산 한 달을 앞둔 시점에 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한 지금의 스폰서님을 만났습니다.처음에는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꾸준히 후원해주시던 스폰서님의 Amway 사업이 보였고 평소 의심이 많은 성향이라 알아보고 이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왜 이제와 그런 걸 하느냐?’, ‘지금 시작하기에 이미 늦었다
저는 18년이 넘게 치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었습니다. 한 쪽으로만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서 직업병이 심각하게 왔고, 어느 순간 ‘더 이상 내가 이 일을 계속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Amway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지금 저의 스폰서님으로부터 사업설명을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사업의 비전을 크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하지만 주어진 시스템대로 미팅장에 다니며 이 회사에 대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 곳의 철학과 가치관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로 인해, 소비자로 머무르는 데 그쳤던 1년 여의 시간이
미술전공을한 저희 부부는 펼치고 싶은 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 에게는 아무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희망이 없던 저에게 결혼 전부터 스폰서님이 작업실로 찾아오시곤 했습니다. 그때는 스폰서님의 발걸음이 제 인생의 커다란 기회였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결혼을 하고 27세에 첫째를 낳고 저에게 삶은 너무나도 막막하고 막연함 뿐이었습니다. 저의 이름은 없어지고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우울증이 왔었던 그 시기에 분유가 떨어지면 스폰서님께 배달을 받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분유로 이어져 가게 된 홈미팅은 저에게 유일한 희망의 통로였습니다.
Amway 사업을 처음 알게 된 지는 제법 되었습니다. 처음엔 Amway 회사에 대한 믿음도 없고 내가 할 일도 아닌 것 같은 생각에 거부했습니다.하지만 남편이 귀가가 늦는 날도 있고, 집에 와서 뭔가 공부도 하는 등 혼자서 이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는 것 같아서, 우려 반 호기심 반의 마음으로 따라다녀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사업에 임하지는 않았습니다.하지만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차츰차츰 마음이 끌렸고, 거기서 알게 된 정보들이 제 머릿속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와 제품에 대한 믿음이 쌓이고 시스템대로만 하면 저
갱년기를 겪으며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후 요가를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두통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정식으로 수련과정을 거쳐 강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수업도 하게 되었습니다. 자투리 시간에는 옷가게와 겸업을 하면서 나름 만족하고 수입도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파트에 같이 사는 지인동생이 나에게 요가를 배우게 되었고, Amway 미팅 장까지 나를 초대를 했습니다. 처음 따라간 미팅 장은 진짜 사람이 많았고, 늦은 밤까지 무언가 열심히 배우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적잖은 충격 이였습니다. 미팅 마지막에 패밀리 리더 분을
제가 Amway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둘째에게 먹일 분유 물 때문에 정수기를 쓰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Amway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생각도 있었으나정수기는 제가 찾던 조건과 딱 맞는 제품이라 주저없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이후로 스폰서님이 계속 찾아 오시면서 제품 데몬을 보여주셨습니다. 집에 누군가 찾아오는 게 불편했지만 와서 계속 정보를 얻는 것이 좋았습니다.디쉬드랍스 데몬을 보여주시면서 세제가 하천으로 흘러가면 생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모든 제품에 브랜드 체인지를 했습니다. 환경에 해가 없으면 사람에
돌이켜보니, 직장 생활이 싫어서 몇 곳을 뛰쳐나와 평생 자영업으로 살아온 우리 부부의 삶은 정열 그 자체였다. 5개의 자영사업체를 열심히 운영하면서 나름 재정의 여유는 갖게 되었지만, 늘 시간에 쪼들렸고 심신이 피곤한 삶의 연속이었다. 거의 20년 동안 Amway 제품 애용자였던 아내의 권유로, 나는 자영업으로 얻게 된 비염, 만성두통, 탈모, 시력저하 등 많은 고통에서 해방되었고, 최근에는 40년 가까이 고통을 겪어왔던 허리통증까지 완쾌됐으니 제품에 대한 감동은 말로 표현할 길 없었다.그런 가운데 아내의 적극적이고 애절한 소개로,
37세에 셋째를 출산하고 한때 꿈이 었던 유치원엄마들과 차 마시며 수다 떠는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대학 동창으로부터 Amway가 왔습니다.초,중학교 동창인 업라인 스폰서님을 함께 만나 식사를 하고 Amway 플랜을 설명 들었을 때 20년 만에 본 친구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다르게 멋져 보였고 사업설명을 통해 Amway가 누군가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특히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셨다는 탑리더님의 이야기가 특별했습니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도 이게 뭐지? 라는 생각과 함께 제 가슴은 두근두
안녕하세요 Nwe Platinum 차정현입니다.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던지요.전 16세 8세 두 딸을 둔 40세 New Platinum 차정현입니다.피아노학원을 운영하던 중 둘째 출산으로 잠깐 쉬고 있을 때 첫째의 학부모로부터 Amway 사업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학원이라는 얽매인 삶에 힘들어하고 있었기에 이렇게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떻게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스폰서님은 자세한 사업설명을 하시고 미팅에 초대하셨습니다. 그 미팅에서 성공자들의 성공 스토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미팅을 들을수록 이일은 내가 찾던 일이라는 것을
부모님은 나를 낳아 길러 주셨고 나를 성장시킨 건 Amway 시스템 입니다. Amway 사업은 저희 신랑의 베스트 프랜드였고 제가 정말 좋아하던 스폰서님 부부를 통해 전달받았습니다. Amway는 문화가 있는 사업으로 홈미팅, 여러 세미나 및 행사 등을 통해 다양한 분들을 만나 보았을 때 정말 좋은 분들이 하시는 사업인 걸 느꼈고 스폰서님 부부와 평생 여행을 다니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뭔가 이루어 내시는 분들을 보면서 대단하다 생각이 들면서 “Why Not Me?” 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직장
15년을 방송작가로 살아왔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좋아 보이는 직업이었지만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5년 뒤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늘 불안했습니다.6시면 칼퇴근 하는 남편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추가소득을 만들 수 있는 무언가 없을까 꾸준히 고민했고, 그러던 중 1년 반 전에 Amway 사업을 시작했던 후배부부를 만나 다시 한 번 사업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처음 들었을 땐 불가능 해 보였던 1,000만PV를 벌써 6번이나 해서 플래티늄이 되었고, 투잡으로 연 3~4천만 원의 추가소득이 생겼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사촌 언니로 부터 바디키를 소개 받으며 Amway가 다가왔습니다.처음에는 선입견으로 거절했지만 바디키를 진행하며 뉴트리라이트에 신뢰가 생겼습니다. 미팅에 초대되었을때 그 곳에 온 사람들을 보고 사업 설명을 듣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늘 경제적 자유를 꿈꾸었지만 현실에 좌절했던 저에겐 이 사업이 참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지?'라는 자문에 WWDB-K의 시스템을 답으로 주셨습니다. 10 core를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나의 노력만으로 이렇게 멋진 보상이 주어진다니 굉장히 신기했습니다.10 core에 집중하며 할 수 있
결혼 초, 방과후 강사로 활동할 때 알고 지내던 선생님으로부터 Amway를 전달 받았습니다. 그때쯤 저희 부부는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숍 창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였고, Amway가 사업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 했었습니다. 그래서 덜컥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매우 달랐습니다. 안정적이지 않은 수입, 그러나 고정적인 임대료, 주말이나 공휴일도 없는 가혹한 현실이 두려움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그 두려움은 또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초석이 되어주었습니다. 4년이 넘도록 저희에게 Amway 사업에 대해
결혼 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 일찍 취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치과 간호조무사 생활 13년 거기에 6년 정도는 저녁에 투 잡까지 하며 돈을 모아 결혼을 했습니다.너무 오랜 기간 일을 한지라 결혼 후에는 돈 잘 버는 신랑 만나 가정주부 되는 것이 소소한 꿈이었기에 결혼과 동시에 모든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결혼 후 1년 정도는 재미있게 살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부터는 현실에 부딪혔습니다.그러던 중 큰아이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돌잔치 상차림이었습니다.이런 직업이 있는지 몰
피아노를 전공한 저는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남편과 함께 천안으로 집을 옮기면서 음악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전부라고 생각한 음악을 못하게 되니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즈음, 스폰서님으로부터 Amway 사업 설명과 제품을 소개받았습니다.스폰서님의 꾸준한 Follow Up으로 어느 날 참석하게 된 대전 GOM에서 저의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메시지를 듣고 현실 점검을 하게 되었습니다.그 때부터 Amway 사업을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미팅을 참석하며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Amway라는 수단으로
Amway!!무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왠지 부담스럽고 선입견과 편견이 있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부담스럽고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던 Amway!!저에게 Amway는 그런 것이었습니다9년 전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된 홈미팅에서 퀸냄비와 인덕션에 반했고 변비로 고생하던 둘째와 천식으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큰아이에게 유산균과 청정기는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어느새 저는 Amway 제품을 하나씩 써보게 되고 애용자라 불리는 고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좋은 세미나가 있으니 한번
굉장히 열심히 살고 있던 나에게교회 친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 선물 같은 기회인 AMWAY를 만나게 되었습니다.어렸을 적부터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만들어서 먹이고 나누는 일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너무 힘든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행복한 일이 었습니다. 돈의 속성과 자산의 개념을 깨달은 후부터는 이 자산이 너무나 필요한 사랑하는 지인들이 여기저기 막 떠올랐고 미친 듯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목이 쉬도록 사업설명을 하러 다녔습니다, 이게 얼떨결에 한 달 만에 SP를 성취했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는 복잡한 갈등을 하고 있을 때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란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정말 생각을 많이 하는 존재입니다. 과학적으로는 1시간에 2천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하루 24시간이면 4만 8천가지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오만가지 잡생각이라는 표현이 나오나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인데 과연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삶에 도움이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많은 생각들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삶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공학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결국은 모든 성공의 시